"운이 좋으셨네요."
제 매출을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처음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업종을 가리지 않고 상품을 기획해 팔아보니, 잘 팔린 제품에는 예외 없이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재능도,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순서였습니다.
아래는 제 손을 거쳐 간 제품들입니다. 욕실 가전, 캠핑 용품, 어린이 완구. 하나도 겹치는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팔린 순서만은 다섯 개가 똑같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제품이 특별해서 팔린 게 아닙니다. 발난로는 겨울 한 철 흔한 물건이었고, 3d펜은 아이들이 쓰는 장난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부 팔렸습니다.
달랐습니다
구매전환 7단계
고객이 사기까지는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냥 사지 않습니다. 무언가 아쉬운 걸 느끼고, 검색해보고, 몇 개를 견줘보고, 그러다 결제합니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거기엔 순서가 있습니다.
이 순서를 모르면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팔기 어렵습니다. 고객이 어디쯤에서 마음을 접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광고비만 더 쓰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고객이 결제에 이르기까지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뜯어봤습니다.
왜 사는지(동기)부터 시작해, 어떻게 찾고(탐색), 어디서 만나고(접점), 왜 누르고(클릭), 왜 고르고(비교), 왜 결제하고(전환), 왜 또 사서 남에게 권하는지(리뷰)까지. 이 일곱 단계를 저는 구매전환 7단계라 부릅니다.
중요한 건 이 일곱 단계가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고객은 무언가를 묻고, 저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왼쪽은 고객의 머릿속이고 오른쪽은 제 할 일입니다. 왼쪽 질문에 답을 못 하면, 오른쪽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없습니다. 썸네일을 백 번 갈아도 고객이 '왜 이 상품이 필요한가'에 답을 못 얻었으면 안 눌러요.
말로만 들으면 막연하실 겁니다. 맨 위의 욕실온풍기를 이 일곱 단계에 올려놓고 적으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여기에 고객 페르소나와 UVP까지 붙이면 구매전환 설계도가 됩니다. 어느 단계에, 누구에게, 무슨 메시지로 갈지를 단계마다 적어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일곱 개나 되는데 전부 잘해야 하나. 아닙니다. 중요한 건 개수가 아니라, 지금 어디가 막혀 있느냐입니다.
물통
한 단계만 막혀도 매출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물통을 떠올려 보세요. 판자 하나가 낮으면, 아무리 다른 판자가 높아도 물은 가장 낮은 판자 높이까지만 찹니다. 매출도 똑같습니다.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일곱 단계 중 한 곳이 막혀 있으면 거기서 멈춥니다. 광고비를 아무리 부어도 첫 매출을 못 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면 막힌 단계부터 고치면 될까요. 여기서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어디를 고칠지와 어디부터 고칠지는 다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도미노
막힌 곳이 어디든,
첫 조각은 ①동기입니다
물통
어느 단계가 막혔는지 알려줍니다. 가장 낮은 판자를 찾는 일입니다.
도미노
어느 단계부터 시작할지 알려줍니다. 첫 조각을 어디에 세우느냐입니다.
물리학자 론 A. 화이트헤드의 연구에 의하면 도미노는 자기보다 1.5배 큰 다음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엔 작은 조각이라도 1.5배씩 계속 넘기다 보면 나중엔 큰 것도 쓰러집니다. 구매전환에서 첫 조각은 ①동기입니다. 동기를 잘못 잡으면 뒤의 키워드도, 썸네일도, 상세페이지도 전부 엉뚱한 곳을 향합니다.
그러면 ①동기는 어떻게 잡는 걸까요. 설명보다 실제로 보시는 게 빠릅니다. 앞에서 보신 필모아 워터저그, 그 펀딩 페이지엔 필모아 텀블러 제조 기술의 집약체라고 적혀 있습니다. 시작이 된 그 텀블러 하나를 처음부터 따라가 보겠습니다.
일곱 단계를 전부 다루진 않겠습니다. 이 제품은 세 지점이 승부처였습니다. 왜 사는지(①동기), 왜 고르는지(⑤비교), 왜 다시 사고 권하는지(⑦리뷰). 이 셋을 어떻게 풀었는지 보시죠.
① 동기 · 왜 사는가
절대강자 스타벅스를 피해,
아무도 안 보던 곳을 봤습니다
텀블러 시장에는 스타벅스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습니다. 주 고객층은 여성인데, 이들은 텀블러를 감성적으로 소비합니다. 음료를 담는 기능보다는 감성적인 패션 악세사리로 보는 것이죠. 여기에 정면으로 뛰어드는 건, 골리앗에게 돌팔매도 없이 달려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공략했습니다. 타깃은 사무실에서 작은 종이컵을 들고 정수기에 물 뜨러 가기 귀찮은 직장인 남성. 이들의 동기는 '텀블러가 갖고 싶다'가 아니었습니다. '물 뜨러 가기 귀찮다'는 하루의 짜증 한 장면이었죠. 제품이 아니라, 그 짜증을 판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곧바로 ⑤비교가 갈렸습니다. 그들에게 대용량, 보온보냉, 밀폐성 기능에 투박한 스테인리스 재질을 입혔습니다. 예쁘지 않은 것, 그게 차별화였습니다. 스타벅스가 예쁘니까요. 동기와 비교가 한 번에 결정된 셈입니다.
예상은 적중했고, 히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판매가 시작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후기를 조사하다 알게 됐는데, 남성을 겨냥해 만든 제품인데 여성 구매가 많았던 겁니다. 정수기에 물 뜨러 가기 귀찮은 건, 여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그래서 화사한 색을 입혀 필모아 마카롱 텀블러를 냈습니다. 타깃을 좁힌 건 옳았지만, 좁힌 진짜 축은 '성별'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는 걸, 고객이 알려준 셈입니다.
여기까지가 동기와 비교였습니다. 이렇게만 해도 히트 상품은 됩니다. 하지만 한 번의 히트가 라인업 전체로 번지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산 사람이 또 사고, 남에게 권하게 만드는 것. 마지막 단계, ⑦리뷰입니다.
⑦ 리뷰 · 왜 또 사고, 남에게 권하는가
말로 하면 안 믿습니다.
그래서 튀김기에 넣었습니다
필모아 텀블러는 보온 12시간, 보냉 24시간이 강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숫자로 적어두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임팩트 있게 보여줄까 고민하다, 이렇게 했습니다.
텀블러에 얼음을 잔뜩 넣고 튀김기에 튀기고, 끓는 물에 담그고, 180℃ 오븐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렸습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얼음이 여전히 녹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렸습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 이 장면 하나가 강했습니다.
그러자 한 고객이 '진짜 안 녹나?' 의구심이 들어, 텀블러에 직접 얼음을 담아 물에 삶아봤다는 겁니다. 진실을 확인하고 만족도가 오르자,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 후기를 직접 공유해주셨습니다. 제가 만든 광고가 아니라, 고객이 만든 광고였습니다.
광고를 의심한 고객이,
직접 삶아봤습니다.
여기에 운도 따랐습니다. 언젠가부터 JTBC 〈아는 형님〉에 이상민 씨가 필모아 텀블러를 들고 나왔습니다. 협찬을 한 것도 아닌데요. 그러자 인터넷에 '이상민 텀블러'를 찾는 사람이 생겼고, 저는 그날로 상세페이지에 그 내용을 반영했습니다. 운이 왔을 때, 흘려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시연으로 의심을 풀고, 고객이 직접 검증해 후기를 남기고, 방송으로 이름까지 퍼졌습니다. ⑦리뷰가 이렇게 완성된 겁니다. 그리고 신뢰가 이만큼 단단해지면, 그다음은 놀랍도록 쉬워집니다.
제품은 옆으로, 또 위로 뻗었습니다. 텀블러 하나에서 마카롱 텀블러, 블랙레이블 텀블러, 필스텐 맥주컵, 탱커, 냉장박스까지 여섯 개가 됐습니다. 첫 도미노가 넘어가자, 나머지가 줄줄이 넘어간 겁니다.
텀블러라서 된 게 아닙니다
완구에서도
같은 순서였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건 텀블러라서 된 것 아니냐고요. 그래서 업종이 전혀 다른 걸 하나만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실리콘 클레이 완구 칼라마법사입니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제품이었는데, 여기에 라바 캐릭터를 입히려고 제작사 투바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라바 클레이를 만드는 업체가 있다며 막더군요.
여기서 저는 고객에게 쓰던 논리를 그대로 썼습니다. "우린 그냥 클레이가 아니라 실리콘 클레이라서 카테고리가 겹치지 않는다." 텀블러에서 스타벅스를 피해 다른 자리를 찾은 것과 같은 수입니다. 상대만 고객에서 라이센서로 바뀌었을 뿐이죠.
9월에 라이센스를 취득해 11월에 출시했고, 12월 말에 대박이 났습니다. 제품 하나로 1년에 30억 매출을 올렸습니다.
텀블러는 리빙, 칼라마법사는 완구입니다. 고객도 가격대도 판매 채널도 다릅니다. 그런데 밟은 순서는 같았습니다.
정리하면, 필모아 텀블러는 우연히 터진 게 아니었습니다. 동기를 다시 잡고(①), 이성으로 차별화하고(⑤), 시연과 후기로 신뢰를 만들고(⑦), 라인업으로 확장하는 순서를, 하나씩 밟은 결과였습니다.
한 단계씩 밟으면,
운은 원리가 됩니다.
맨 앞에서 보여드린 욕실온풍기도, 플라잉볼도, 발난로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막힌 곳은 제품마다 달랐지만, 걸어간 순서는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대표님 상품에도 똑같이 통합니다. 제가 특별해서 만든 숫자가 아니라 원리가 만든 숫자이고, 원리는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한 편에 다 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일곱 단계를 하나씩 열어드리겠습니다
다음 화부터는 각 단계의 기본 이론과, 그 이론으로 실제 상품을 개선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론만 알려드리면 남의 이야기로 끝나니까요. 어떤 상품의 무엇을 어떻게 고쳤는지까지 같이 보여드리겠습니다. 둘을 붙여야 대표님 상품에 그대로 옮기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읽고 끝내지 마십시오. 한 화를 보시면 그 자리에서 대표님 상품을 꺼내 같은 단계에 적용해보세요. 오늘 필모아의 ①동기를 대표님 상품의 ①동기 자리에, ⑤비교를 ⑤비교 자리에 바꿔 넣는 겁니다. 그렇게 일곱 단계를 하나씩 다 밟고 나면, 다음 실적 캡처의 주인공은 대표님이 됩니다.